영원은 순간 속에, 허윤희

이유선, 성북구립미술관 학예연구사

들어가며

성북구립미술관의 기획전시《허윤희: 영원은 순간 속에》(2025.07.08.~09.07)는 목탄 드로잉들과 <나뭇잎 일기> 연작으로 잘 알려진 작가 허윤희(1968~ )의 새로운 그림 <해돋이 일기>로 포문을 연다. 근작인 만큼 일견 낯설 수 있는 이 유화 작업들은 작가 허윤희가 온전히 작업에만 집중하기 위하여 제주로 작업실을 옮긴 후, 2023년 10월부터 매일 그리기 시작한 제주바다의 일출 그림 연작이다. 이 과정을 여러 계절에 거쳐 촬영한 다큐멘터리 영상『계절 의식』(2025)은 떠오르는 해를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제주 바다의 정경과 태양빛이 만들어내는 색채, 이를 화폭에 묵묵히 옮기는 작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영상 속 작가를 보고 있으면 파도와 바람 소리 너머 어디선가 심장 고동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해가 떠오르는 짧은 시간 동안 화폭에 온전히 에너지를 담아내기 위해서는 한 호흡도 허투루 내쉬면 안 된다. 붓질이 호흡을 통해 작품과 만나고 화면에는 숨과 혼이 깃든다. 아마도 그런 연유로 작품 속 에너지가 작가의 몸을 통해 즉각적인 생명력으로 발현되는 것일 터이다. <해돋이 일기> 뿐 아니다. 손바닥만 한 작은 종이 드로잉에서부터 커다란 벽화에 이르기까지, 작품을 보고 있으면 생생한 날 것의 꿈틀대는 힘이 전달된다. 목탄이라는 재료적 특성과 자연이라는 소재의 힘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리고 어째서 그들은 그렇게 끈질기도록 생명과 시간의 중첩으로 향하는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까지 허윤희의 작품을 다룰 때마다 빠뜨리지 않고 언급되어온 바는 목탄이 지닌 고유의 성질과 자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태도, 그리고 보이지 않는 것을 통해 존재를 드러내려는 동양철학적 사유 등이다. 이는 그의 작품세계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본 글에서는 작가 허윤희의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는 보다 본질적인 특질을 다음 두 가지로 짚어보고자 한다. 하나는‘즉흥’이라는 본성과 그로 인해 비롯되는‘몸의 감각’, 그리고 두 번째로‘기록하는 이’로서의 자의식이다. 이 두 가지 요소를 통해 자연의 순환과 영원의 시간성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작품과 함께 살펴볼 것이다.

즉흥성과 몸

허윤희는 스스로에 대하여 즉흥적이고 극단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 시절부터 틀에 얽매이는 것을 거부하고 싶어했다는 그는 몸의 표현을 통한 즉각적인 반응과 본능적인 감각이 우선한다. 그것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뜨는 곳을 바라보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본성에 가깝다. 작품 속 자연스러움과 날것의 감각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무엇보다 이러한 특성은 <나뭇잎 일기>(2008-2021), <해돋이 일기>(2023- ) 연작과 같이 그날 그날 마주치는 것들이 작품의 주된 소재가 되어온 시간과도 무관하지 않다. 사전에 계획을 두고 구상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새로 만나는 나뭇잎, 떠오르는 해가 만들어내는 빛깔과 색채를 즉흥적으로 수용하는 작업이다.

“도대체 나는 매일 태양을 그리며 무엇을 깨닫게 될까”

“나는 이 그림 위에 더 그릴 수 없다고 했다. 그 현장의 생생한 순간에서의 그 느낌에 가필을 하는 것은 생명력을 없애는 것이다.”(<해돋이 일기> 중)

떠오르는 해를 따라잡기 위해 빠르게 물감을 개고 눈으로 급히 쫓는 작가의 모습에 스스로를 이입해본다면 마치 명상을 하는 듯한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상황을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계획보다는 자연의 질서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수용의 태도가 더 필요한 것이다. 그러면서 본능적인 감각이 더욱 섬세하게 벼리어진다. 이성과 사고가 비집고 들어올 틈 없이 완전한 몰입으로써 정제되지 않은 강렬한 에너지를 발산한다.
그가 목탄을 이용해 드로잉을 주로 하는 것 역시 이러한 원초적이고 다듬어지지 않은 날것의 생명력을 본능적으로 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은 더 없이 이상적인 재료다. 머리에서 손끝까지의 거리가 멀지 않은 듯 목탄이 닿는 순간의 에너지는 즉각적으로 전달된다. 그리다 잘못된 것은 슥슥 지워 나간다. 지워지는 것 또한 화면 안에 존재의 흔적을 남겨둔다. 그리는 과정이 남아 시간의 중첩을 드러낸다. 작가가 목탄을 가장 좋아하고 즐겨 사용하는 이유다. 애초에 그는 완벽한 순간을 만나길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 속에 숨겨진 시간을 발견하고 싶어 하는 것이다. 순간의 에너지와 몰입은 필선을 통해 드러난다. 작품 하나만 놓고 본다면 즉각적이고 순발력 있는 작업들이지만 그 안에는 오랜 시간 수천수만 번의 선을 단련된 시간들이 녹아 있다. 그러한 경험이 체화되어 즉각적인 몸의 반응으로 연결된다. 그의 작품에서 몸의 감각이 특히 중요한 이유다.

이러한 특징은 특히 허윤희 작가에게 본능적인 지향인 듯 하다. 그는 독일 브레멘에서 유학할 당시에 지도교수와 함께 남서부 프랑스 가스코뉴 지방의 오뜨 피레네에 위치한 아카데미 갈랑(Galan)에서 진행했던 예술 프로젝트를 가장 인상 깊은 경험 중 하나로 꼽고 있다. 당시의 허윤희 작가가 했던 작업인 <관 집>(2001년)과 <둥근 정원>(1999년)은 자연 속에 내 몸을 측량치로 삼아 예술로서의 흔적을 남기고 이것이 다시 자연 안에서 품어지는 과정을 체험한 것이다. 중요한 점은 초기에 자연과 예술가로서의 자신과의 관계 접점을 자신의 몸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연을 타자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과 일치시킨 셈이다. 한편으로 이 작업들에 담긴 죽음과 삶의 관조, 파내어진 구덩이와 높이 자란 나무가 가려놓은 그 흔적들은 생의 순환 과정을 보여준다. 이는 작가가 생각하는 예술의 과정, 존재의 방식, 자연과의 관계 등을 살펴볼 수 있는 초기 작업으로서 현재까지 그 관심사와 기조가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매일의 기록

삶과 작업이 불가분의 관계로 연결되면서 작가가 축적해온 경험은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그가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써오던 경험이 있다는 사실은 유의미한 지점이다. 허윤희 작가는 충동적이고 급한 성정을 다스리고 작가로서 성장하기 위해 꾸준함을 기르는 훈련으로서 반복 작업을 지속해왔다고 말한다. 이렇게 하루의 단상을 정리하는 기록의 태도는 작가의 내밀한 사유가 발아하는데 중요한 자양분이 될 뿐만 아니라 완성이 아닌 과정에 몰두하는 맥락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내가 오늘 획득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다.

결과 보다 과정 모든 순간이 소중한 이유다”(해돋이 일기 2023.10.22. 중)

“매일 실험 중이다. 다양한 크기와 붓 터치, 페인팅미디엄 등 … 제대로 찾으려는 과정의 연속… 그림에는 시간이 담겨있다. 사진과 다른 점이다. 사진은 찰칵 하고 셔터를 누르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담긴다. 그러나 그림에는 붓 터치 하나하나에 시간이 담긴다. 그 시간이 쌓여 그림이 된다.”(해돋이 일기 2023.11.02. 중)

“날마다 같은 곳을 걸어도 늘 새롭다. 또 같은 나무의 잎이라도 다 다르다. 하나도 똑같은 나뭇잎이 없다.”(『나뭇잎 일기』(궁리 출판) 작가의 말 중)

이번 전시에서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해돋이 일기>는 물론이거니와 전작들에서도 지속적으로 기록이 작가 허윤희의 예술세계에 있어서 중요한 모티프로 작용하고 있다. 12년 동안 매일 하나의 나뭇잎을 실제와 똑같이 그리고 그날의 단상을 기록해둔 <나뭇잎 일기>와 멸종 위기의 식물을 영정 사진처럼 기록하듯 그린 <사라져가는 얼굴들>(2020- )연작은 그의 작업에 있어서 중요한 위치를 점한다. 특히 이 작업들을 통해 작가는 기억을 위한 행위로서 그림을 그리는 동시에 실천을 위한 사회적 발화를 하고 있는 셈이다.

초기 작업인 <윤희 그림>(1996) 또한 유학 당시의 감정과 고뇌, 의지가 고스란히 담긴 일기에 다름 아니다. 작가는 인터뷰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일기를 써오면서 글과 그림이라는 서로 다른 매개가 조화를 이루는 구성에 익숙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스스로에게 있어서 기록이란“붙잡고 싶은 삶의 아름다운 순간들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열망”이라 이야기한다. 세상에 흔적을 남기려는 열정은 매일의 기록이라는 꾸준함과 만나 새로운 가치를 창조한다.

전시장을 가득 채운 <해돋이 일기>연작에서 엿보이듯 꾸준함과 기록은 힘이 있다. 그냥 해돋이 풍경이 아니라 해돋이‘일기’라는 점이 중요하다.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한번만 보는 것과 그것을 매일 같이 보고 변화와 차이를 기록하는 일은 다른 결과를 불러온다. 꾸준한 기록은 변화를 감지하게 한다. 해가 지나는 길을 좇다 보면 화폭 속 풍경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다. 매일 같은 자리에 앉아서 그림을 그리지만 해는 조금씩 움직인다. 겨울에는 남동쪽의 넓은 수평선 위에 둥실 떠오르지만 봄을 지나 여름이 가까워지면 해가 저만큼 이동해서 멀리 범섬과 육지인 고근산 너머로 내다보인다. 하나의 그림을 볼 때는 알 수 없지만 켜켜이 쌓인 시간만큼 수많은 작품을 볼 때에야 비로소 그 변화의 큰 힘을 체감할 수 있다.

<해돋이 일기> 연작이 흥미로운 데에는 작가가 그림과 함께 기록하는 일기 역시 큰 몫을 한다. 들여다보면 그림을 그리느라 고군분투하였을 작가의 모습이 겹쳐진다. 겨울 어떤 날 은 바람이 너무 거세게 불어서 그림 그리기 위해 세워둔 텐트가 날아갈 뻔 하는가 하면 또 어떤 날은 해가 뜨길 내내 기다렸지만 끝내 얼굴을 비추지 않아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해가 너무 성큼성큼 떠오르는 바람에 풍광과 바다의 빛깔이 순식간에 변하는 데서 오는 난감함도 보인다. 숨도 못 쉴 정도로 급하게 해를 따라 그려다가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온 세상이 밝아졌던 경험들, 눈으로 보는 장관을 그림에 다 담지 못하는 데서 오는 아쉬움과 더 잘 그리고 싶다는 열망도 많이 등장한다. 그리고 누가 보든 안보든 정확하고 꾸준하게 떠오르는 해의 성실함을 여러 일기에서 언급하고 있는데 허윤희 작가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성실함 역시 보는 이들로 하여금 유사 감동을 전달한다. 매일 아침 뜨는 해와 함께 하기 위해 2년 가까이 매달린 끈기와 열정이 이렇듯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연의 질서, 순환

오랜 시간에 걸쳐 변화를 기록하는 태도는 자연스레 자연의 질서와 순환을 이해하고 겸허히 수용하는 것으로 연결된다. 그의 작품에서 자주 동양철학의 연기(緣起)론적 성찰과 우주만물의 음양(陰陽)순환과도 같은 사유가 등장하는 것에서 알 수 있다. 비워짐이 있으면 채움이 있고, 죽음으로서 삶을 강조하는 등 서로 다른 속성들이 어우러지며 의미를 더욱 강화하고 존재를 부각시키는 동양적 순환사상은 그의 작품 근저에 깔려 있는 특성이다. 자연에 깊이 공감하고 스스로에게 이를 투영하는 것 역시 이런 체감과도 연관되어 있다. 모든 것이 서로 연결되어 이어져 있다는 생각은 매 순간의 지속이 바로 영원임을 암시한다.

이러한 태도는 작업 초기에서부터 발견된다. <윤희 그림>(1996)에서 작가는“자연은 우리에게 생성, 소멸, 순환을 가르쳐준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에 자연적인 삶이 자연스럽고 인간적”이라고 적고 있다. 그는 앞서 언급한 바 있는 남프랑스 갈랑 아카데미에서 예술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는 법을 배웠다. 인간의 의지와 계획을 넘어서는 어찌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한 힘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우주의 섭리와 그로부터 모든 생명이 발아하고 소멸한다는 것, 그리고 거스를 수 없는 시간의 힘과 그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의 삶을 경험했다. 한편으로 삶 곳곳에 숨어 있는 슬픔, 고난, 어려움들이 우주의 거대한 관점에서 보면 미미할 뿐이라는 사실에서 작가는 깊은 위로를 느꼈다고 한다.

“나는 변하지 않는 영원한 것을 동경했다. 그러나 이 땅 위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이 변한다는 진실을 깨닫고 받아들었을 때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영원은 순간 속에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 영원이 아닌 ‘지금, 여기’에 대하여, 의미 있는 시간은 ‘현재’ 뿐임을 작업으로 말하고 싶었다.”

순간을 영원으로

사라져가는 것에 생을 부여하는 태도 역시 여기에서 기인한다. 나무를 태워 검게 그을린 목탄 한 조각이 그림으로 남아 새로운 생을 부여받음으로써 또 다른 존재가 되는 것처럼 멸(滅)은 생(生)으로 가기 위한 필연적인 과정이다. 작가는 이러한 목탄 드로잉을 종이 너머 벽화로 확장했다. <가득찬 빔>(2001)은 독일 브레멘의 한 갤러리에서 선보인 벽화 작업이자 퍼포먼스이다. 2채널로 구성된 작업 중 왼쪽의 영상에서 작가는 목탄으로 한 쪽 벽면을 가득 채우는 작업을 한다. 다른 한 쪽의 영상에서는 오랜 시간과 노력을 들여 완성한 벽화 위에 다시 흰색을 덧칠 하면서 그렸던 벽화를 지워나가는 작업이 이어진다. 결국 지우는 작업이 끝난 뒤에는 벽의 바닥에 떨어진 목탄 가루만이 이전 벽화에 대한 흔적으로 존재한다. 여기에서 우리는 방금 전까지도 존재하던 것이 사라져버리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상실에 대한 경험은 필연적으로 과거가 되어 남겨진 지금 현재, 이 순간의 사라짐을 체감하게 한다. 즉 존재의 결핍을 통해 존재를 느끼는 것이다. 결핍이 가져다주는 아쉬움, 갈망과 같은 감정 역시 곧 사라져버리고 마는 순간과 같다. <해돋이 일기>와 약 25년이라는 시간차를 두고 있으면서도 <가득찬 빔>은 이러한 접점을 지닌다. 바로 존재의 사라짐이 만들어내는 더 큰 존재감, 즉 생의 순환이다. 이는 <가득찬 빔>과 동일한 해에 제작된 <관 집>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철학적 사유로서 허윤희 예술세계의 근간에 자리하는 핵심 주제이다.

<나뭇잎 일기> 역시 나무에서 떨어진 생의 흔적을 붙들어 두기 위한 작업이다. 그림으로 나뭇잎의 한 순간을 온전히 담아두고 자신의 단상을 적어가는 것은 마치 생명의 숨이 막 꺼져가는 그 순간 위에 내 삶의 하루를 포개어 두는 것 같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독일에서의 작업인 <윤희 그림> 역시 같은 맥락에서 읽힌다. 헌 책이라는 소재는 그 자체로 시간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글이 쓰인 특정한 시간, 그리고 편집되어 출판되는 특정한 날 위에 그것을 꺼내어 펼쳐 읽는 순간이 매번 또 다른 의미로 쌓여간다. <윤희 그림>을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보면 낡은 책 위에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듯, 시간의 층위를 쌓음으로써 사라져가는 것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작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그의 작품에는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순간의 축적과, 반대로 사라져가는 여린 생명에 또 다른 의미의 존재감을 부여해온 영원에의 열망이 함께 공존한다고 할 수 있다.

나가며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허윤희 작가는 지난 30여 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관심사의 확대에 따라 작품의 주제, 기법 및 매체, 재료의 다양성 등 특정 범주에 얽매이지 않고 여러 변화를 수용해 스펙트럼을 넓히고 있다. 이들 작업은 모두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의 공통된 내용을 우리에게 전달하고 있다. 벼리어진 몸의 감각을 통해 발견하게 되는, 곧 사라져버리는 아름다움의 순간을 어떻게 우리는 영원히 붙들 수 있을까. 그것이 눈앞에서 사라져버리고 나면 정말 존재하지 않는 걸까.

목탄 드로잉들과 유화, 벽화 퍼포먼스 영상, <나뭇잎 일기>와 <사라져가는 얼굴>, <빙하> 연작들에서부터 최근 작업인 <해돋이일기>를 아우르는 이번 성북구립미술관의 전시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하고자 한다. 사라짐의 순간과 그렇기에 더해지는 영원에의 갈망, 그 순간들을 이어가며 빚어내는 아름다움이란 완벽한 결과가 아닌 수행의 과정 그 자체에 있다. 결국 영원이란 순간의 지속이기 때문이다. 이번 여름, 허윤희 작가의 오랜 묵상과 같은 작품들을 통해 생의 아름다움과 자연이 주는 위로, 연대의 감동이 관람객들에게도 온전히 전달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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