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선학
온갖 재료들의 활용, 그것은 단순한 재료가 아니라 표현이며 물성을 하나의 심리적 움직임으로 포착해서 표현하려는 현대미술의 탈장르와 무관하지 않다. 우리의 표현영역과 표현의 가능성이 무한해졌지만, 어떤 것도 표현으로 가능해졌지만 때로 무가치를 가치로 왜곡하거나 은폐하는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목탄이라는 낡은 재료와 드로잉이라는 단순하고 원초적인 표현은 이런 시대에 풍요 속에서 비곤함이 가진 광휘의 표현을 안겨준다. 허윤희 작업은 무엇보다 한 개인이 가진 섬세한 심리적 층위와 간절하고 애틋한 생명에 대한 천착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한 시대가 요구하는 생명이라는 내용과 그에 비교할만한 단순명료한 재료가 주는 만남은 한 인간의 실존적 물음을 이렇게 직접적이고 수식 없이 보여주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호화스럽고 찬란하고 감정적 낭비에 가까운 함성들 사이에서 차분하고 밀도 있게 자신과 우리의 존재, 그 깊이에 있는 생명에 대한 의식을 애틋하게 일깨워주는 작업이다.
72cmx102cm의 작업이 있는가 하면, 120cmx260cm도 있다. 크기를 잴 수 없이 벽면을 가득 메운 드로잉 퍼포먼스도 있다. 이들 작업이 보이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직접적인 자신의 행위와 하나인 순간으로 생성되는 형상들이다. 구체성과 추상성, 대상과 행위를 분리불가능 하게 하면서 우리의 지각과 감성을 작품 속으로 몰아가는 힘들의 장소를 제공한다.
거칠고 직접적인 선들의 단호함과 그 사이로 목탄의 흔적들이 묻어나면서, 대상과 형상 주위를 감싸돌면서, 존재의 상황을 주저하면서 다가가거나 불러일으키는 목탄의 활용과 표현은 재료 과잉, 감성 과잉에 비교할만한 견제와 절제와 주저함, 도리어 침묵으로 보는 이를 몰아가면서 생성하는 생명의 애틋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단숨에 보는 이의 시선을 끄는 작가의 작품에 주목해주시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