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탄으로 말을 걸다

이선화 기자

 개인전 마지막 날 만난 허윤희는 몸이 채 회복되지 않은 듯 했다. 작가는 어스름한 지하의 전시 공간을 작업실로 삼으며 목탄을 긋고 또 그어 〈날들의 흔적〉이라는 벽화를 완성 지었다. 그가 바라마지 않았던 형상들이 삼면을 감쌌고, 목탄 가루의 잔재가 바닥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냈다. ‘지금 여기’라는 시공간의 현전성을 강조하며 목탄으로 풀어내는 허윤희식 말 걸기. 휘몰아치는 삶의 고단한 순간순간을 향하는 따스한 시선을 엿본다

석유난로가 놓인 작업실에 석양빛이 은은하게 비추인다. 노을 지는 한겨울의 그 시간, 그 곳에서 허윤희를 만났다. 작업실에는 생각지 못한 대형 유화 작업이 눈에 익은 목탄 작업과 더불어 놓여 있었고, 책상에는 그가 산책 중에 거둬들인 낙엽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천장에는 낙엽 모빌이 가볍게 흔들리면서 시선을 사로잡았다. 굳이 서둘러 살피지는 않았다.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글을 읽고 시를 쓰는 그곳은 작업만큼이나 사색적이고 평온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화실에서 조곤조곤 이야기를 나누던 언니를 만나는 것도 같았다. 그의 내면에 겹겹이 쌓인, 지난 기억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은 마음은 더욱 강해졌다.

수많은 날들의 흔적

허윤희를 처음 만난 때는 지난 2007년 웨이방갤러리의 개인전에서였다. 한 벽면을 가득 채웠던 대형 목탄화를 마주했을 때 느꼈던 너른 울림이 꽤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약 1년이 흘렀다. 그는 〈날들의 흔적〉(2008. 11. 19~12. 19)이라는 타이틀로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 벽화 작업을 선보였고, 이번 전시에 대한 평은 작가의 고되었던 작업 과정을 치유하듯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다. 허윤희는 한 달을 꼬박 채우며 음습한 지하 공간의 거친 시멘트 벽 위에서 지우고 그리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정면을 바라보는 고독한 인물 형상이 초반의 계획과 달리 측면으로 변화하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벽의 제반 조건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메마른 벽에 풍부한 목탄의 선이 거쳐지고, 목탄가루는 고스란히 바닥에 남았다. ‘날들의 흔적’이란 이렇게 명명된 것이다.

허윤희가 목탄을 작업의 주 재료로 삼은 시기는 유학을 떠난 후부터다. 대학을 졸업하고 장지에 아크릴 물감을 사용하거나 갱지에 먹을 사용하면서 드로잉적 작업 경향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목탄을 직접적으로 다룬 것은 아니었다. “독일로 떠나면서 목탄을 많이 사가지고 갔어요. 목탄으로 내 생각을 정리하고 그 후 걸러진 것을 회화로 옮겨야지 생각했었죠. 그런데 목탄으로 표현을 하다 보니까 내가 그리고 싶은 느낌이 완전히 충족되는 거예요. 당시 삶이 너무 외롭고 힘들었어요. 작품을 하면서 빨리 내 감정을 쏟아내고 싶었는데, 목탄은 단기간 집중해서 그리면 완성이 되잖아요. 그래서 나랑 더 잘 맞았던 거 같아요.”

그림의 형식적인 미보다 철학적인 면을 더욱 중요시하리라 생각해 찾은 독일, 그곳에서 작가는 20대 후반과 30대의 대부분을 보냈다. 언어적 제약은 말할 것도 없고 심리적인 어려움도 상당했을 터. 그러나 허윤희는 10년간의 독일 생활에서 ‘나 답다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누구인지 찾게 되었다고 말했다. “서울예고와 이화여대를 다녔는데, 재미가 없었어요. 그런데 독일 학교는 너무 즐거웠어요. 사실 힘든 점도 많았죠. 유학 초반에는 수업 시간에 무슨 말을 하는 지 하나도 못 알아들었으니까요. 이불 뒤집어쓰고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나도 무슨 말인지 알고 싶은데 너무 답답했죠. 그러면서 서서히 들리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렇게라도 알 수 있게 된 것이 기쁨이었죠.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알고 싶은 욕구는 더욱 강해졌어요.” 이렇게 그가 이해할 수 있는 독일어의 수는 점차 늘어갔고, 그를 향한 주변의 물음 또한 많아졌다. “넌 어디에서 왔니?” 작가에게 수없이 떨어지는 이 질문을 받으면서 정체성에 대한 고민도 커져갔는데, 그것은 단지 어디로부터 떠나왔느냐는 지리적인 근거를 넘어 낭만적인 시적 표현법으로 이어졌다. 여기에서 허윤희의 또 다른 재주를 발견할 수 있다.

시, 물, 그리고 치유

허윤희는 학창시절에 항시 문예부에서 활동하면서 막연하게나마 시인을 동경하고 꿈꿨다. 특별한 감정을 시각 이미지로 구현하는 화가의 길을 걷게 된 후에도 그는 여전히 상징적이고 압축적인 언어 구사 능력을 병행하면서 자신의 느낌을 시로 표현한다. 어린 시절의 꿈을 놓고 싶지 않았다고 수줍게 말하긴 했지만 그의 시는 작가가 쉽게 꺼내지 못할 기억들을 들여다볼 수 있는 솔직한 고백에 다름 아니다. “사막 같은 날들 나는 목이 마르네/ 물기 빠진 껍데기/ 한참을 걸어 멀리서 반짝이는 큰 물을 보았네/ 온 몸으로 그 물을 마시고 싶어/ 그리고 지친 그대를 불러 이 물 깊은 곳에 가라앉고 싶네/ 그러나 검은 물결 나는 가지고 오지도 못하네/ 그저 물소리로 타는 목을 달래네”

독일 정착 후 채 몇 년이 지나지 않았던 시기였다. 작가는 ‘목마름(Thirst)’이라는 위의 시를 완성했고 동일한 제목으로 여러 점의 목탄화를 그려내었다. 한국에 남겨놓은 것들에 대한 향수가 밀려오고 삶의 무게가 버거울 때마다 타는 듯한 갈증을 느꼈다는 그. 인생이 어두웠기에 찬란한 빛이, 마음이 스산했기에 따뜻한 햇살이 떠올랐을 법도 한데, 허윤희에게는 그 치유 대상이 다름 아닌 물이었다. 때문에 〈목마름〉 〈우리는 어디로부터 왔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다이버〉 〈조국〉 등 그가 유학 초기에 제작한 작품의 대다수는 풍요로운 물의 이미지를 가득 담고 있다.

“목마름이라는 시는 온전히 내 경험에서 나온 거예요. 그 당시 내가 물기 빠진 껍데기 같았거든요. 작업을 하다 갑자기 뛰쳐나갔어요. 자전거를 타고 무작정 아무데나 갔는데 눈앞으로 큰 호수가 나타났어요. 지도를 보고 찾아간 것도 아닌데, 반짝반짝 빛나는 호수가 확 펼쳐져 있기에 깜짝 놀랐죠. 그래서 그 풍경을 시로 쓰고, 학교에 가서 2주 동안 〈목마름〉 시리즈를 그렸어요.”

어머니의 양수 속에 웅크리고 있던 편안함과 풍요의 상징, 작가에게 물이란 이러한 의미였다. 한국을 떠나 먼 타향으로 건너오는 데에도 그의 시적 상상력에는 물이 등장했고, 사라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삶의 유동성에도 물의 흐름을 생각했다. 그리고 그 물 위로 씨를 뿌리거나 손의 형상으로 물결을 만들거나 물속에 흥건히 잠기는 드로잉을 그리면서 자신의 결핍된 상태를 충족시키고자 했다. 당연히 작가의 손에는 언제나 목탄이 들려 있었고 셀 수 없이 긋고 지우는 과정은 삶을 향한 의지에의 표지(標識)로 연결된다.

기실 우리는 손이라는 신체 일부분에 많은 의미를 부여하곤 한다. 신용과 믿음으로서 악수를 청하고 두손을 모아 기도를 올리고 약속의 징표로서 새끼손가락을 마주 걸고 주먹을 불끈 쥐고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기 때문일 터다. 그의 말을 빌어 ‘시적인 도구’라 할 목탄을 손에 부여잡고 허윤희도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또한, 지금 이 순간이라는 찰나적 개념과 사라짐에 대한 관심도 드러낸다. “독일에 있으면서 불교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색즉시공 공즉시색(모든 것이 사실은 사라지는 거라는 의미)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중요한 것은 현재라고 생각해요. 물론 현재에는 과거와 미래가 포함되어 있을 테지만요. 이 개념을 그림에 더욱 표현하고 싶었어요. 공간으로 봤을 때 그림이 여기에도 걸리고 저기에도 걸리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이 장소로서의 의미를 강조하는 거죠. 그림 또한 이 시간이 지나면 지워지는 것이고요. 비록 없어지지만 기억 속에는 더 선명하게 남을 수 있는 것, 그것에 주목하기 위해 벽화로 확대해서 작업을 진행한 거예요.”

삶 자체를 물이라 여기며 생명의 씨를 뿌리겠다는 작가는 요즈음 자연물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말한다. 때문에 그의 최근작에는 꽃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이러한 변화는 산을 매일 찾으며 사색하는 시간을 갖는 작가의 일상과도 연관이 깊다. 그는 산책길에서 나뭇잎을 주워 그림으로 옮기고 하루의 단상을 기록하는 다이어리 드로잉을 이어오고 있다. 끊임없이 변하는 시간의 순간순간을 애정으로 보듬는 허윤희, 그의 작업에서 연약한 듯 강인한 삶에의 의지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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