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찬 빔 사라짐 속의 충만

김정윤,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사

허윤희는 인간 존재의 근원과 자연의 순환을 탐색하며 실존적 사유와 생태적 감각이 교차하는 독자적인 작업 세계를 형성해왔다. 나무를 태워 만든 목탄은 그의 회화에서 삶의 흔적과 시간을 드러내는 핵심적 재료이다. 작가가 목탄으로 표현하는 그리기와 지우기의 반복은 감정의 표출을 넘어 ‘살아내기’에 가까운 수행으로 이어진다. 그의 화면 위의 선과 흔적은 생성과 소멸을 오가며, 존재가 시간을 통과하는 리듬을 드러낸다.

독일 유학 시절 겪은 고립감과 언어적 단절은 삶의 유한성과 인간과 세상의 관계를 다시 묻는 계기가 되었다. 낯선 언어와 침묵의 순간은 작가에게 내면의 힘을 각성시키는 장이 되었고, 이러한 경험은 그의 작업 세계를 구성하는 기반이 된다. ‘나’에 대한 질문은 점차 세계와 예술의 본질로 확장되었고, 그의 회화는 신체의 움직임과 시간이 만나는 지점을 기록하는 방식으로 전환된다. 작가에게 목탄의 부서짐과 번짐, 그리고 지워짐은 인간의 삶을 닮아 있으며, 이 수행적 반복 속에서 예술은 시간의 체험이자 존재의 증명이 된다.

귀국 이후 그의 시선은 자연과 생명으로 확장된다. 재난, 환경 파괴, 멸종 위기 같은 동시대의 현실 안에서 인간과 자연을 하나의 순환 구조 안에 놓인 관계적 존재로 바라보게 된 것이다. 일기 형식의 연작은 자연의 리듬을 관찰하고 기록하는 그의 일상적 실천을 보여주며, 예술을 세계와 공명하는 삶의 방식으로 확장한다.

허윤희의 작업에서 중요한 것은 남겨진 형상보다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라짐’이다. 사라짐은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충만이며, 비움은 다시 채움으로 이어지는 순환의 일부가 된다. 찰나와 지속이 맞닿는 경계에서 존재와 자연은 서로를 비추고, 그의 회화는 그 반사된 빛 속에서 삶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번 전시 《허윤희: 가득찬 빔》은 이러한 30년의 여정을 세 개의 장으로 나누어, 실존적 탐색에서 신체적 수행, 그리고 생태적 사유로 이어지는 흐름을 따라 소개한다.

존재의 증명

허윤희의 독일 유학 시기(1995–2004)는 이후 30여 년 작업의 밑바탕을 이룬 전환기다. 타자로 머물 수밖에 없는 환경 속에서 그는 스스로의 삶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낯선 언어와 풍경, 문화적 차이는 ‘세상과의 단절’을 예민하게 체감하게 했다. 이때의 침묵은 부족함이 아니라 생각이 응축되는 사색의 장이었고, 작가의 예술은 감정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인간이 자기 자신과 세계를 이해하는 통로로 자리 잡는다. 이 과정에서 목탄이라는 원초적 재료와 신체 중심의 드로잉 방식이 확립되고, 언어·기억·몸을 둘러싼 시각 언어가 재구성된다. 이 시기에 탄생한 〈윤희 그림〉과 〈관집〉은 그러한 변화가 또렷이 드러나는 대표적인 작업이다.

〈윤희 그림〉은 독일어 텍스트가 가득한 책 위에 자신의 선을 중첩하는 작업으로, 타자의 언어 속에 자기 흔적을 새기는 근본적인 시도라 할 수 있다. 활자와 선이 뒤섞인 화면에는 언어적 소외감과 정체성의 흔들림이 동시에 드러나며, 낯선 세계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다시 태어나려는 의지가 포착된다. 이렇듯 ‘타자의 언어를 견디는 시간’은 점차 ‘자신의 언어를 만들어가는 시간’으로 옮겨간다.

〈관집〉은 ‘날마다 죽음의 감각으로 삶을 바라보기’라는 작가의 생각을 구조적으로 시각화한 작업이다. 관(棺)은 죽음을, 집은 삶의 터전을 상징한다. 이 둘을 하나의 구조물로 결합한 〈관집〉은 삶과 죽음이 단절된 개념이 아니라 동일한 연속선 위에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한 설치 작품을 넘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사유하게 하는 일종의 철학적 장치로 기능하며, 죽음을 응시함으로써 오히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하게 만든다. 이번 전시에서 〈관집〉은 2025년 버전으로 새롭게 재제작되어, 관람객이 직접 내부에 들어가 경험할 수 있는 공간적 작품으로 확장된다. 이는 실존적 사유가 작가 개인을 넘어 타자, 공간, 관객의 몸으로 이어지는 실천임을 보여준다.

허윤희의 독일 시기는 단순한 ‘초기 실험기’가 아니라, 사라짐과 순환, 삶의 연속성 같은 핵심적인 생각이 처음 모습을 드러낸 시간이다. 여기서 마련된 인식의 틀은 귀국 이후 자연과 생명으로의 시선, 생태적 감수성, 수행적 회화 방식으로 이어진다. 결국 작가가 회화를 삶의 한 방식, 곧 ‘살아내기의 방식’으로 확립하게 된 중요한 계기라 할 수 있다.

몸과 시간의 흔적

작가의 실존적 탐구는 목탄이라는 매체에 대한 집중으로 이어진다. 불에 태운 나무의 잔존물인 목탄에는 생성과 소멸의 흔적이 겹쳐 있으며, 그 위에 다시 선을 긋고 지우는 과정은 “존재는 남겨진 결과가 아니라 과정 그 자체”라는 인식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행위가 된다. 2001년 처음 시작된 대형 목탄 벽화 작업은 이후 모든 작업을 관통하는 사유의 장을 열었다. 작가는 장대에 길게 묶은 목탄으로 전신을 사용해 선을 긋는다. 여기서 선은 더 이상 대상을 묘사하는 도구가 아니라, 몸이 공간을 통과하며 남기는 궤적이다. 움직임의 속도와 무게, 호흡은 화면에 차곡차곡 쌓여 회화적 이미지라기보다 ‘시간의 지층’을 형성한다. 이 벽화는 곧 ‘살아낸 시간’의 증거이며, 신체가 매 순간 갱신하는 생명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작가의 목탄 벽화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완성 이후 이어지는 ‘지우기’이다. 작가는 작업을 마친 뒤 화면을 다시 흰 공간으로 돌려놓는다. 이는 상실의 몸짓이라기보다,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무상의 실천이다. 붓질의 흔적, 목탄의 파편, 닦아낸 자리의 얼룩들은 사라지는 과정을 통해 오히려 존재의 감각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남지 않는다는 사실이 오히려 그 순간을 더 강렬한 기록으로 만든다.

이번 전시의 신작 〈물의 평화〉는 이러한 수행적 회화의 원리를 자연의 이미지로 확장한 작업이다. 작가는 물속에 잠긴 여인의 형상을 통해 ‘몸의 리듬’과 ‘자연의 호흡’이 맞닿는 지점을 그린다. 오랫동안 두려움과 생존의 이미지였던 물은 이번 작업에서 온전히 몸을 내맡길 수 있는 평온한 장으로 재구성된다. 물결을 따라 흔들리는 실루엣과 목탄의 번짐은 존재와 자연이 서로에게 스며드는 과정을 보여주며, 벽화에서 축적해 온 ‘몸–시간–사라짐’의 구조를 자연의 장면 속으로 옮겨놓는다.

이처럼 허윤희의 목탄 벽화는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수렴된다. “남는 것과 사라지는 것 중 무엇이 존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는가.” 작가에게 사라짐은 결핍이 아니라 또 다른 충만이다. 벽화는 사라지지만 행위는 남고, 이미지는 지워지지만 존재는 그곳에 있었다는 사실이 기록된다. 이렇게 작가의 목탄 벽화는 회화의 외연을 확장하며, 예술이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는 것’이라는 사실을 조용하고도 강하게 증언한다.

생태적 실존

귀국 이후 허윤희의 시선은 보다 넓은 관계로 향한다. 독일에서의 고립이 ‘나 자신’에 대한 질문을 불러일으켰다면, 이후 작업은 인간을 둘러싼 세상, 특히 자연과 생명에 대한 감각으로 확장된다. 이 변화는 단순한 소재의 이동을 넘어, 기후 위기와 재난, 멸종 위기 같은 시대의 징후에 대한 응답으로 읽을 수 있다. 이제 작가에게 자연은 함께 숨 쉬며 살아가는 존재이자 교감의 대상이다. 오랜 타지 생활 이후 귀향한 뒤 마주한 배추 한 다발은 단순한 채소가 아니라 삶의 뿌리와 생명력을 상기시키는 상징이 되었다. 이후 그의 화면에서 자연은 기억·회복·환대의 정서를 품게 된다. 이는 작가의 작업에서 인간과 자연이 호흡을 공유하는 감각적 기반이 형성되는 지점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빙하〉 연작에서 작가는 지구의 긴 시간과 인간 문명의 균열을 한 화면에 병치한다. 빙하는 수만 년의 시간이 압축된 생태계의 기억이자, 인간의 탐욕과 개발로 가장 먼저 상처받는 존재이다. 빙하와 도시를 나란히 놓은 화면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 우리가 같은 운명선 위에 서 있음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선은 개별 생명의 얼굴로도 이어진다. 〈사라져가는 얼굴〉은 멸종 위기 식물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작업으로, 기록을 넘어 존재를 대면하는 윤리적 회화이다. 사라져가는 생명을 그리는 행위는 사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마주한 생명과의 잠정적 관계를 화면에 남기는 수행적 실천이다. 〈개가시나무는 살아있다〉는 ‘살아 있음’이라는 문장을 통해 대상이 죽어가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 지지하는 자리에 설 수 있음을 보여준다.

〈나뭇잎일기〉와 〈해돋이일기〉는 작가의 생태적 감각이 가장 섬세하게 드러나는 지점이다. 매일 주워온 나뭇잎을 그리는 행위, 매일 떠오르는 태양을 기록하는 행위는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자연의 시간과 자신의 시간이 맞닿는 지점에서 출발한다. 회화는 수행이자 명상이고, 자연은 치유의 공간이자 삶의 근원이다. 이 일기(日記)적 작업들은 사유와 감정, 관찰과 호흡이 한 화면 안에서 조용히 공존하는 회화적 일상으로 자리 잡는다.

마지막 장 ‘생태적 실존’은 결국 한 가지 질문을 이끈다. “우리는 사라져가는 세계 앞에서 무엇을 보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그의 화면 속 자연은 단순히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라, 소멸의 시간과 삶의 시간, 인간의 취약성과 회복의 가능성이 겹쳐진 사유의 장이다. 작가는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매일의 관찰, 작은 생명과의 마주침, 사라짐을 받아들이는 태도, 그리고 다시 그리는 행위를 통해 조용한 답을 건넨다. 전시의 마지막 장인 ‘생태적 실존’은 허윤희 작업이 도달한 확장된 결론이자, 생명과 공존의 윤리를 시각적으로 묻는 자리라 할 수 있다.

그의 예술은 이렇게 한 사람의 내면에서 출발해 생명과 세계를 향한 질문으로 확장되는 순환 구조를 형성한다. 생성과 소멸, 사라짐과 흔적이 맞물리는 그 흐름 속에서, 허윤희는 인간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감각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한다.

가득찬 빔

전시 제목 ‘가득찬 빔’은 작가가 직접 쓴 시와 작품에서 비롯된 표현으로, 채움과 비움, 생성과 소멸의 순환을 상징한다. ‘가득찬 빔’은 단순한 역설이 아니라, 사라짐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비움 속에서 새로운 생명을 불러오는 실천을 함축하는 말이다. 허윤희의 작업은 이 순환을 시각화함으로써 삶의 본질을 은유한다.

《허윤희: 가득찬 빔》은 실존의 탐색에서 생명의 순환, 생태의 사유로 이어지는 작가의 여정을 따라가며 한 개인의 내면을 넘어 존재와 세계의 관계를 다시 성찰하게 한다. 이 전시는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사라지는 것들 속에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하고, 또 무엇을 이어갈 것인가를.

사라짐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비움은 공백이 아니라 충만이다. 바로 그 역설의 순간에, 허윤희의 예술은 가장 깊고 넓은 빛을 품는다. 그 빛이 우리 마음속에 조용히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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